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전 크림반도라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불법으로 점령 후 합병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크림반도는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지였습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한 이유와 두나라 간 어떤 사정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크림반도 합병 사태 정리
▒ 크림반도 합병이란
우크라이나 영토인 반도 ( 삼면은 바다 한면은 육지로 이어진 땅 ) 크림( Crimea )을 2014년에 러시아가 강제적으로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킨 사건입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에서 독립 후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던 땅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크림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와의 사이에서 크림반도 편입에 관한 조약을 만들어 러시아로 편입시켜버린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일어난 합병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당시 우크라이나의 총리는 이 합병을 두고 국제적 수준의 강도짓 이라는 표현을 했고요.
한편으로 러시아 국내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큰폭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 크림 자치공화국이란
크림반도 안에 있던 세바스토폴시(우크라이나 정부 직할시)를 제외한 지역을 관리하는 자치공화국.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면서도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 안의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바위산이 특징적인 해변가가 펼쳐진 흑해에 접한 아름다운 관광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고요.
1954년 당시 소련최고지도자 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일부라 선언했지만, 러시아인은 대부분 불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살고 있는 인구 반이상은 러시아계, 4분의1은 우크라이나계, 나머지는 크림타타르인( 반러시아파 )으로 자치공화국 내에서도 친러파와 반대파로 갈라지는 상황이였습니다.
▒ 크림반도 합병은 왜 일어났는가
1. 러시아에 지배당한 크림반도와 크림 타타르인
1783년 예카테리나 2세가 통치하던 러시아제국은 크림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에 승리하고 크림을 러시아의 일부로 편입시켰습니다.
당시 크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크림 타타르인 ( 투르크계 민족으로 대부분 이슬람교도 ) 이였으며, 러시아제국에 합병된 이후 차별을 받기 시작, 소련시대에 들어가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1917년부터 33년까지 크림 타타르인의 반이 살해당하거나 기아로 인한 사망하는 일이 많았으며 1944년에는 나머지 크림타타르인 마저 소련에 의해 추방되어 중앙아시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인구의 극소수만이 크림타타르인인 상황입니다.
2. 선물로 우크라이나에 전달된 크림반도
1954년 당시 소련 지도자 후르쇼프는 개인적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였던 우크라이나에게 크림반도를 이관시켰습니다 . 바로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주는 같은 민족(동포)에의 선물이였던거죠.
당시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소비에트 연방국가에 속했기 때문에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의 관리하에 들어간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3. 소련붕괴 후 크림반도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1년 말,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독립하기 위해 찬반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였던 키예프에서는 96% 찬성, 하지만 크림반도에서는 55%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독립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낮았던 거죠.
그리고 소련에서 독립 후 1년이 되기도 전인 1992년 5월에 크림 주의회는 크림공화국을 세워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물론 러시아는 이를 지지했고요.
하지만 러시아가 체첸공화국의 독립문제해결을 우선시하며 크림독립 지지를 중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크림공화국의 독립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1998년에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며 마침내 크림자치공화국 이 되었죠.
4. 친러시아파와 친서방(유럽)파로 분열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사회주의에서 서서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변해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렵에 친화적인 친유럽파와 러시아에 친밀한 러시아파로 의견이 대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나라를 새로 만들어나갈지를 놓고 두의견이 팽팽하게 맞선것이죠.
5. 무력충돌
그 와중에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였던 친러파 야누코비치는 EU(유럽연합)에 가입을 미루고 러시아와 조약을 맺으려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대한 친유럽파들이 대대적으로 항의하며 그 해 11월 유로마이단( 직역하면 유럽광장 ) 이라 불리는 시위운동이 시작되었죠. 이 시위는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많은 참가자들이 친러파 아래에 있던 경찰이나 정부군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탄핵당하여 러시아로 망명하고 친유럽파에 의한 대통령이 탄생했죠.
6. 크림반도 합병
친유럽파에 의한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자 친러파가 많이 거주하던 크림반도와 동우크라이나 지역에서도 항의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친러파에 의한 항의운동이였죠.
결국은 친러파와 친유럽파 쌍방의 무력 충돌이 2014년 시작되었습니다.
리틀그린맨이라 불리는 무장병사들이 크림반도의 정부기관을 점령한 것이죠.
그 결과로 크림 자치공화국의 수장은 새롭게 친러파 세르게이가 지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흐름을 타고 크림자치공화국은 러시아의 일부가 되기로 하는 합의를 합니다.
그리고 2014년 3월 주민투표 후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여 러시아로 편입이 승인되었습니다.
크림자치공화국중선거관리위원회 ( 친러파 관리 )에 의하면 투표의 찬성률은 96%였다고 발표했지만, 크림 타타르인의 대부분은 투표를 거부했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하기는 어렵죠.
결과적으로는 이투표와 러시아의 무력 점령으로 인해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측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당한채 일방적으로 러시아영토가 되었습니다.
▶ 리틀그린맨이란
계급, 소속, 부대 마크 등 표식이 없는 초록색 군복을 입은 군부대. 정체를 알 수 없으므로 영화속에서 외계인을 뜻하는 리틀 그린맨이라 불렸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에 이들을 러시아 소속이 아니라 부정했지만 그 후 러시아병사라는 인정을 했다.
▒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탐내는 이유
1. 역사적인 상징성
크림 반도는 러시아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1850년대 러시아제국이 프랑스, 영국, 오스만제국과 싸운 크림전쟁은 바로 크림반도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배했지만 전쟁 중 러시아군의 용감함과 장렬함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역사이며 정체성 ( 아이덴티티 )의 뿌리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크림반도의 유명 리조트지 얄타는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의 회담으로 유명한 얄타회담이 이루어진 장소이기 때문에 러시아인에게 있어 중요한 곳이기도 하죠.
2. 지리학적 위치의 중요성
크림반도는 상징적으로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러시아의 전략상 최요충지인 곳입니다. 크림반도 남서쪽에 있는 세바스트폴은 러시아 해군의 유일한 거점지이며 지중해를 넘어 군사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포인트 지점이기 때문.
러시아는 세바스트폴을 경유해서 시리아내전 중 아사드정권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알려져있고, 단순히 생각해도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해군기지가 없으면 현재의 국제적 군사력을 유지하지 어려웠을 거라고 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