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한 날이 한여름의 숨 막히는 8월이었다.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읽는 내내 감정 소모가 커서 힘들었다.
영국의 서머셋 몸이 침 튀기며 불멸의 작품이라 칭찬했다는 그 소설이 이것이란 말인가. 그저 일반인인 나에게는 1독만으로는 이해불가였다.
끊임없이 영화화 드라마화되어 재생산되는 작품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터. 원작의 서사적이며 아름다운 문체가 매력포인트라고 하나 원서로 읽으며 문장의 유려함을 느낄만한 실력이 나에게는 없구나.
악마가 두 가문을 철저히 짓밟는 이야기
천애고아를 데려와 재워주고 먹여주는 정을 베풀었더니 열등감으로 뭉친 배은망덕한 놈이 되어 두 가문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짓밟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란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어설픈 복수 방식과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밤고구마 백개 먹은 답답함을 선사한다. 읽는 내내 사이다 원샷하고픈 심정이었다.
사랑? 대체 무엇이 사랑인가. 그저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미친 집착, 광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척박한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
원작 제목인 워더링 하이츠는 저택의 이름이지만, 한국어 번역은 폭풍의 언덕이다. 정말 내용과 잘 연결되는 찰떡 네이밍 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일본어 번역도 폭풍의 언덕(嵐が丘)인데, 일본어 버전으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일 것인가.
환경이 인간의 생애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두 척박한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영향으로 하나같이 불처럼 지랄 맞은 성격을 자랑한다.
좋은 말로는 열정적이라고 해 두자.
영화판 폭풍의 언덕은 애절한 남녀의 로맨스만 부각시켜 만들어놨다. 수익창출을 위한 할리우드의 흔한 편집을 당한 것이다.
로맨스라니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성격에 환경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주제를 극단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너무 극단적이어서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히스클리프는 나야
캐서린의 감정이 오롯이 녹아 들어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자신도 몰랐겠지.
두 남녀의 엇갈린 행동을 보며 참 징하다 란 말이 저절로 나오고 히스클리프란 글자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재독 삼독을 하다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는 소설이라고들 하는데 당분간은 그런 감정 소모는 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의 내 마음이 그런 작품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댓글